요즘 시간이 날 때마다 글로우서울의 유정수 대표가 이야기해온 다양한 콘텐츠를 다시 찾아보며 시장과 현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약속상권’에 대한 관점이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이유를 단순한 유행이나 마케팅 성과로 설명하지 않고, 사람들이 왜 일부러 시간을 내어 특정 장소를 찾아가는지, 그리고 그 흐름이 어떻게 상권을 만들고 확장시키는지를 구조적으로 풀어낸 설명이었다. 이 글은 그 내용을 바탕으로, 약속상권을 한 번 차분하게 정리해본 기록이다.

약속상권은 말 그대로 사람들이 약속을 잡고 찾아오는 상권이다. 가까워서 들르는 곳이 아니라, 시간을 쓰기 위해 이동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약속상권에서는 ‘거리’보다 ‘이유’가 중요하다. 사람들은 이동에 있어 최단거리만을 좇지 않는다. 시간을 소비하러 나온 이상, 볼거리와 경험이 많은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이벤트가 많고, 걷는 재미가 있고, 머물 이유가 있는 곳으로 유동은 모인다.
이 구조를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개념이 부모상권과 자식상권이다. 홍대는 한때 서울을 대표하는 부모상권이었다. 그리고 그 넘친 유동은 위로는 신촌, 아래로는 합정과 망원, 옆으로는 연남과 연희로 흘러가며 새로운 상권을 만들었다. 중앙의 메인 상권에서 흘러나온 물이 주변에서 다시 고여 하나의 호수를 만들고, 그것이 자식상권이 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차이가 생긴다. 최근 합정은 예전보다 힘이 약해진 반면, 연남은 여전히 강하다. 그 이유는 단순히 트렌드의 문제가 아니다. 연남에는 연트럴파크라는 공원이 있다. 이는 상권의 분위기를 지탱하는 물리적 자산이자 부동산 잔존가치다. 반면 합정에는 이와 같은 지속적인 체류 장치가 없다. 약속상권은 결국 ‘대체 불가능한 이유’를 가진 곳만 살아남는다.
비슷한 맥락에서 익선동이 인사동보다 경쟁력이 있는 이유도 설명할 수 있다. 익선동은 100년 넘게 유지된 한옥 보존지구라는 명확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성수 역시 오래된 공장 건물이라는 물리적 자산을 기반으로 상권의 색깔을 만들어냈다. 새로워서 강한 것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쉽게 복제할 수 없어서 강한 상권이다.
상권도 사람처럼 나이를 먹는다. 시간이 지나면 부모상권은 점점 힘이 빠지고, 자식상권은 오히려 성장한다. 성수에서 뚝섬으로, 종각에서 익선동으로 이어진 흐름이 그렇다. 그리고 지금은 자식상권이 또 다른 자식을 낳는 단계에 와 있다. 익선동에서 서순라길로 이어지는 흐름은, 부모상권에서 시작된 에너지가 손자상권까지 확장되는 전형적인 사례다.
이런 상권을 탐색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주말 임장만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주말에 사람이 많다고 해서 좋은 상권은 아니다. 아무리 주말 매출이 높아도, 평일 매출이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면 주말 장사만으로는 운영이 어렵다. 주말이나 특정 이벤트만 보고 판단하면 ‘터널 시야’에 갇히기 쉽다. 터널 밖에는 전혀 다른 기회가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약속상권을 볼 때는 평일에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봐야 한다. 오전 시간대 청담동 브런치 장사가 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평일 낮에 움직이는 가정주부들 역시 하나의 소비 주체이며, 이들은 생활상권과 가까운 약속상권을 찾는다. 아이 픽업이나 일정 사이의 짧은 시간에 소비가 이루어지는 구조다.
외국인 여행객 수요도 중요하다. 이들은 이미 항공권과 숙박에 비용을 지불한 상태에서 들어온 소비자다. 소비를 전제로 움직이며, 지갑을 계속 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외국인 유동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 가장 강한 약속상권이 어디인지 자연스럽게 보인다. 여전히 성수, 홍대, 익선동은 강하지만, 한때 상징적이었던 이태원은 눈에 띄게 약해졌다.
약속상권과 생활상권의 차이 중 하나는 주기성이다. 약속상권은 주기성이 길고, 생활상권은 주기성이 짧다. 생활상권에 가까운 소비자는 짧은 주기의 아이템을 반복 소비하고, 약속상권에서는 경험 중심의 소비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아이템 선택 역시 상권의 성격에 맞아야 한다.
인사동, 삼청동, 북촌, 익선동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유동을 나눠 갖는 상권이다. 하지만 동시에 경쟁 관계에 있다. 방문객은 이 모든 곳을 다 둘러보지 않는다. 결국 선택을 하게 된다. 현재 외국인 기준으로는 익선동의 선택률이 높고, 그 결과 코로나 이후 매장당 매출 역시 익선동이 더 높아졌다.
지금 익선동은 다시 서순라길이라는 자식을 낳고 있다. 종각이라는 부모상권에서 시작된 흐름이 익선동과 인사동을 거쳐 손자상권으로 확장되는 모습이다. 익선동 초기에 장사하던 사람들이 서순라길로 확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만약 창업을 고민하고 있다면, 이미 약해질 가능성이 높은 부모상권보다 성장 국면에 있는 자식상권이 더 유리할 수 있다. 물론 초기 상권에는 리스크도 존재한다.
결국 장사는 어떤 자리에서 시작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약속상권은 만들어지는 것이지, 우연히 발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래에는 이번 글을 정리하는 데 참고가 되었던 글로우서울 유정수 대표의 약속상권 관련 유튜브 영상들을 함께 링크해두려 한다.
약속상권을 단편적인 성공 사례가 아니라, 흐름과 구조로 이해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함께 보면 도움이 될 자료들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RMgm3yNVH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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